2014년 10월 8일 수요일

노자 老子 도덕경 1-20

老子 제1장 - 도라 이름할 수 있는 도는 불변의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불변의 도가 아니요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할 수 없는 것은 천지의 시원이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은 만물의 모태이다.
(무는 천지의 시원을 이름이오 무는 만물의 모태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는 것으로 미묘한 본체를 살피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핀다.
그러므로 상무는 그로써 신묘함을 살피고자 하고,
상유는 그로써 명백성을 살피려 한다.
이 둘은 도에서 같이 나와 이름은 달리하나 둘다 현묘한 것이라고 한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미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다.
 
道, 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좌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廖兮 獨立而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25장)

天地萬物生於有 有生於無.(Being comes into being from Non-being.).
  (40장 전문 :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地萬物生於有 有生於無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황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21장)

道常無名 The Tao is eternal, nameless - 32장
道隱無名 The Tao, lying hid, is nameless - 41장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51장)
 
 
 
 
老子 제2장 - 스스로 공을 자처하지 않는다.
 
天下皆知 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夫唯不居, 是以不去.

사람들이 아름답다 하니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악한 것이 있기 때문일 뿐이고,
선하다고 하니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선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가 낳는 것이고,
어렵고 쉬운 것이 서로가 이루고,
길고 짧은 것은 형태를 드러내어 서로 비교되기 때문이며,
높고 낮은 것이 서로 기울어지고,
음과 성은 서로가 있어야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앞이 있어야 뒤가 따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작위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행한다.
 
천지 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노고를 사양하지 아니하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행하고도 자랑하지 않고,공을 이루어도 자기의 공로를 자처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공은 그에게서 떠나가지 않는다.
 
 
老子 제3장 - 현능함을 높이지 않으면 다툼이 없다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 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현능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고 경쟁하는 일이 없게 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하는 일이 없게 되고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야욕을 보여 주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은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의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게 하고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며 밖으로 향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약하게 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골격을 튼튼하게 한다.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하며
 아는 자로 하여금 감히 작위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의 다스림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
 
 
老子 제4장 - 도는 우주보다 먼저 존재했다
 
道, 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좌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도는 비어 있으나 아무리 사용해도 늘 가득 차 있고 넘치지 않는다.
깊고 넓어서 만물의 근본인 것 같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복잡한 것을 풀며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에도 뒤섞이건만
맑고 고요함이 늘 그대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도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보다도 먼저 있었던 것 같다.
 
 
老子 제5장 - 말이 많으면 막히게 된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전대 탁 풀무 피리 약
천지가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로 여긴다.

성인도 어질지 않아서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아서 비어 있으나 힘이 끝이 없고 움직일 수록 힘이 더욱 커진다.
말이 많으면 이치에 곤궁하게 되니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하다.
 
老子 제6장 - 도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도는 텅 빈 산골짜기의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근본이라 한다.
그 뿌리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고 천지만물이 아무리 써도 지쳐 없어지지 않는다.
 
 
老子 제7장 - 사심을 버림으로 존재하게 된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 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오래다.
천지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영원히 살 수 있다.
 성인은 자신을 뒤에 머물게 함으로 앞서고 자신의 이익을 떠나 잊으므로
실은 자신이 거기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사로운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老子 제8장 -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다투는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
사는 곳으로는 땅 위가 좋고, 마음은 못처럼 깊은 것이 좋고,
벗은 어진 사람이 좋고, 말은 믿음이 있어야 좋고,
정치나 법률은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것이 좋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능숙한 것이 좋고,
행동은 적당한 시기를 아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됨이 없는 것이다. 물은 이에 제일 가깝다.
 
 
老子 제9장 -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
 
持而盈之, 不如其已. 而銳之, 不可長保. 
金玉萬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
 
헤아릴 췌, 헤아릴 취, 때릴 추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무리해서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단단히 붙들고 가득 채우기보다는  따르기를 그치는 것이 낫다.)
 두들겨 날카롭게 만든 칼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은 보화를 집안에 가득 쌓아둔다고 해서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다.
부귀하여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부르게 될 것이다.
일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천도의 이치이다.
 
 
老子 제10장 - 낳고 기르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孀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知乎?
天門開闔, 能無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천지의 만물을 만들어 내고 또 길러 내고 만들어 내면서도
 그 공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작용하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만물을 기르면서도 이를 지배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현묘한 성인의 덕이다. ..


老子 제11장 - 비어 있음으로 쓰임이 있다.
 
(三)十輻共一.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爽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轂 바퀴통 곡 埏 땅 가장자리 연, 이길 선

서른개의 바큇살이 바퀴통에 모여 있으나, 바퀴통 복판이 비어 있음으로 쓸모가 있고,
찰흙을 이겨 옹기그릇을 만드나, 그 한가운데가 비어 있어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만들어 방을 만드나, 안이 비어 있기 때문에 방으로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모양이 있는 것이 쓸모가 있는 것은 모양이 없는 것이 그 뒷받침을 하기 때문이다.
 
 
老子 제12장 - 배를 채울 뿐 겉치레는 하지 않는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田獵 令人心發狂, 難得之貨 令人行妨,
是以聖人 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

 
오색의 찬란한 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의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의 좋은 맛은 사람의 입을 버려 놓는다.
말을 타고 짐승을 사냥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행실을 나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채울 뿐 겉치레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고 한다.
 
 
老子 제13장 - 괴로움이 다 하면 즐거움이 온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
 
은총도 굴욕도 깜짝 놀랄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이하고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제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 하라.
 
 은총도 굴욕도 깜짝 놀랠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이 하라 하는 것은
사랑 받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행하여지므로 얻어도 잃어도 조심하며 놀랍게 여기라는 것이니
 이래서 은총과 굴욕은 깜짝 놀랄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 하는 것이다.
 
큰 근심을 피하려 하지 말고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하라 하는 것은
 나에게 큰 근심이 있음은 나의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 몸이 없으면 내게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내 몸을 소중히 여기듯이 천하를 소중히 여긴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고
내 몸을 사랑하듯이 천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부탁할 수 있다.
귀하게 여기기를 몸을 천하처럼 하면(자신을 천하처럼 귀하게 여기면)  천하를 맡길 만하고,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천하처럼 여기면 천하를 위탁할 만하다 
 
老子 제14장 - 도는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교,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恍惚.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빛이 없다고 한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 해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소리가 없다고 한다.
손으로 쳐보고 만져보아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형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말로는 도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말을 섞어 하나로 한 존재인 것이다.
 
그 위 부분은 분명하지가 못하고 그 아랫 부분은 어둡지가 않다.
휑하여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물질 세계를 초월한 곳으로 되돌아가 있다.
이 것을 모양 없는 모양, 물질의 차원을 초월한 형상이라 한다.
어렴풋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앞에서 본다고 그 머리가 보일 리 없고 뒤에서 본다고 그 꼬리가 보일 리 없다.
태고 때부터 진리를 꼭 잡고 삼라만상을 주재하고 있다.
역사와 시간의 첫 근원을 알 수 있는 것, 그 것을 도의 본질이라 한다.
 
 
老子 제15장 - 참된 사람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客,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而新成
.
 
예로부터 도를 닦은 훌륭한 선비는 미묘하고 심원하여 그 깊이를 헤아려 알 수가 없다.
깊이를 헤아려 알 수 없기에 모습을 억지로 묘사해 보면
그 신중한 모습은 추운 겨울에 찬 냇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고
조심하는 모습은 주위를 둘러싼 적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숙해서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손님의 당당한 모습과 같고
부드럽게 막힘이 없는 것은 봄바람에 녹는 어름과 같다.
꾸밈이 없는 것은 마치 산에서 갓 베어낸 통나무와 같고
 구애되지 않는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골짜기와 같으며
세상과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은, 마치 흐려진 물과도 같다.
 
흐린 물을 흐린 채 그대로 두어 서서히 가라앉아 맑아지게 하는
 그런 무위의 일을 그 누가 하겠는가?
산골짜기처럼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 풀과 나무가 서서히 자라고 있듯이,
그런 무위의 것을 누가 하겠는가?
이 무위의 도를 몸에 품고 있는 사람은 보름달처럼 꽉 차 있는 것을 바라는 일이 없다.
그렇게 차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옷이 낡으면 새 것을 만들어 입듯이 변화 속에 다함이 없다.

 

 

 

老子 제16장 - 자신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라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마음이 텅 빈 극치에 이르고 참답게 무위의 고요함을 지키게 되면

만상의 온갖 움직임이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만물이 번성하는데서 나는 복귀의 현상을 본다. - 풍우란)

만상이 갖가지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저마다 자신의 뿌리고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뿌리로 돌아가 있는 것을 고요, 무위의 고요함이라 말하고 고요한 것을

명, 각자 본래의 참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고 한다.

명에 돌아가 있는 것을 떳떳함, 영원불멸이라 말하며 떳떳함 본연의 모습에 눈뜨는 것을

밝음, 절대의 지혜라 한다.

*復歸는 모든 생산력의 근원, 어두운 것 , 계곡과 여성, 모든 사물들의 문호와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그라함)

 

떳떳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면 경거망동해서 불길하다.

떳떳한 것을 깨달으면 누구에게 대해서나 너그럽게 되고 너그럽게 되면 공평무사하며,

왕자의 덕을 갖추게 되고 왕자의 덕을 갖추면 하늘과 같이 광대해지며

 하늘처럼 넓고 커지면 무위의 도와 하나가 되고 무위의 도와 하나가 되면 영원불멸이 된다.

몸을 마칠 때까지 편안히 살게 되는 것이다.

 

 

老子 제17장 - 최상의 다스림은 존재만을 알게 하는 것이다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

 

최상의 군주는 백성들이 다만 임금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인 군주이다.

백성들이 다정함을 느끼고 칭송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배자를 두려워하는 정치는 그 아래이며 백성들이 업신여기게끔 되면 가장 낮은 지배자다.

지배자에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함이 부족하면 백성들로부터 신용을 얻지 못한다.

최선의 군주는 무위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공을 이루어도 백성들에게 자랑하지 아니하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老子 제18장 - 지혜가 있으므로 속임이 있게 되었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큰 도가 행해지지 않게 되자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 강조되게 되었고,

지혜가 발달하니 거짓이 있게 되었다.

집안 사람끼리 불화가 생기게 되니 효니 자애니 논란이 생기게 되고,

나라의 질서가 문란해지면 충신이란 것이 만들어지게 된다.

 

 

老子 제19장 - 순박한 마음으로 욕망을 버려라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정치하는 사람이 재주와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행복과 이익은 백 배가 되고

정치하는 사람이 인과 의를 버리면 백성은 본래의 사랑과 효도로 돌아가게 된다.

 정치하는 사람이 제도와 도구를 버리면 세상에 도둑과 범죄는 생기는 일이 없다.

위의 세 얘기로도 무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본 바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 사사로운 정을 억누르고

 나를 위한 욕심을 적게 하라.

 

 

老子 제20장 -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亨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 如孀兒之未孩. 내래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요兮若無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而貴食母.

 

학문을 그만두면 근심이 없다.

 '네'나 '응'이나 대답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막막해서 끝이 없다.

사람은 그저 마음이 들떠서 잘 차린 상을 받은 손님 같고,

봄날 높은 대에 오른 구경꾼 같다.

 

그러나 나만은 조용히 마음이 움직이는 기색마저 없고,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이와 같다.

초라하니 풀이 죽은 주인 없는 나그네 같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은 늘 가난하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 그저 멍청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활발한데, 나만은 흐리멍덩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상세하고 분명한데, 나만은 우물쭈물 결단을 못 내린다.

바다처럼 흔들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정처 없다.

사람들은 다 유능한데, 나만은 우둔하고 촌스럽다.

나만이 남다른 사람이라 먹이고 길러준 어머니의 도를 소중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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