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은
중국에서 붓대롱에다 목화씨를 숨겨와서
처가댁인 경남 산청에다 목화를 심어서,
우리나라에 무명옷을 만들 수 있게 한 분이시다.
그 문익점 선생의 18대 후손 문경호씨가 19세기 중엽에 더를 잡아
조선말기 전통가옥 9채와 재실 1채, 정사 1채, 문고 1채를 지으셨다.
마을의 대표건물로는 광거당과 수봉정사 그리고 인수문고라 한다.
길 옆에는 벼를 심어놓은 논이 있고,
외로이 서 있는 은행나무 한그루가 보입니다.
멀리 밭고랑 끝에 삼층탑이 보이는데,
이곳은 원래 고려의 대찰 인흥사의 터라고 하네요
사찰은 간곳없고, 이 탑하나가 덩그렁게 옛 영광의 인흥사를 말하고 있군요.
마당안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대체로 뒷 담에는 있을법한 대나무가 기와집과 어우러진
대나무의 모습이 싱그럽기까지 합니다.
회화나무는 옛날 중국으로 부터 하사받은 나무로
정이품이상 벼슬한 분들이 낙향을 할 때 이 회화나무를 기증을 하셨다고 합니다.
대체로 회화나무아래서 학자들이 회합을 하기 때문에 [학자수]라고도 부름니다.
생명력이 길어서 오래 살고 있는 수종의 하나입니다,
오래사는 나무는 꽃을 잘 피우지 않는데,
이 회화나무는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중국에서는 괴수, 괴목이라 부르는 나무입니다.
중국 북경의 식물원을 들어가면 큰 나무가 바로 이 회화나무입니다.
장수목 [ 느티나무, 은행나무, 회화나무, 측백나무, 배롱나무 ]
능소화는 다른 나무에 기생을 해서 꽃을 피우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능소화가 감고 있는 나무는 결국 고사를 하게 되지요
그래서
상식적으로 능소화를 담장안에 심으면 집안이 망한다는 일설도 있어요
그건 다른 식물의 영양을 빨고 살기 때문에 붙여진것 같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능소화를.... 능소화에 대한 모독 아닐런지요!
마을과 마을을 담장으로 이어주고, 분리를 해 주는 듯 합니다.
모두 흙과 돌로 쌓아진 담장에 기와를 얹혀 놓았네요
우리 담장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을 하였습니다.
수봉정사 왼쪽으로 난 계단입니다.
모두가 담장으로 연결되어, 건물들이 숨바꼭질 하는듯하군요
인수문고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도 이곳을 지키고 사시는 분인듯 하네요
[인수문고]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현존하는 사립도서관 중 고문서가 가장 많은 곳이랍니다.
2만여 국내외 전적 (8,500여책 , 1책은 2권 3권이 있슴)과 문건등을 수장하고 있고,
보기 드문 희귀 서적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소장하는 책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것들이며,
이 책들을 중국 북경에서 구입을 해서, 산동성으로 이동을 한 후
목포로 건너와 소달구지로 대구 달성 이곳까지 운송을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던 시절에 이렇게 많은 장서를 모아온 뜻이
정말 대단하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행들 중에는 인수문고를 열어서 서고를 보신 분들도 계시다고 하는데
나는 안타깝게 보지 못하였네요
[문영박 1880-1930] 선생에 의해서 이 전적들이 중국,일본에서
모아진 것이랍니다.
인수문고에서 수봉정사를 내다 본 전경입니다.
인수정사 뜰에 소나무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수봉정사는 문중 자제들의 배움터이자 학문을 논하던 곳이고,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응접실의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수봉정사의 정원입니다.
다정한 소나무들과 아름다운 흙담장이 우리네 멋을 자아내고 있네요
수봉정사에 걸려있는 [수백당]이라는 현판입니다.
무슨용도일까요?
담장 한곳에서 발견된 여의주를 들고 있는 용을 양각한 석조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임금님과 관계된 것인데,
아마도 무슨 이유가 있는것인데,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광거당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흙으로 만든 담장이 아치형을 하고 있군요.
기와로 선과 선의 이음, 면과 면의 이음이 독특한 지붕입니다.
조선후기의 건물로 참 특이하면서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네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거북 두마리가 대문에 붙어 있네요
섬세하지는 않지만, 무병장수를 기리는 길상물인 듯 합니다.
나무의 결로 보아서 느티나무로 만든것 같습니다.
[광거당]
1910년 문봉성 부자가 지은 재실입니다.
오늘날 학교의 기능을 하였으며, 문중 자제들이 수학을 하던 곳이라 합니다.
뜰에 심어진 모과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였습니다.
담장과 어우러진 광거당 참으로 고전미가 넘치는 멋이 있는
건물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낮은 기와토담은
특히 광거당 건축미의 백미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담장입니다.
광거당을 둘러쌓은 토담에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추사선생님이 쓰신 현판 글씨입니다.
이 현판의 뜻은 "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이 있는 집이란 뜻"이랍니다.
세거지 주변의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노송들은 풍수설로 허한 곳을 비보하기 위해
심은 것이라 합니다.
나무의 평균 높이가 14m, 수령은 100년을 넘긴 장수목이라는 군요
1982년에 천연보호림(기념물 제249호)로 지정이 되어 있답니다.
마을 어귀에서 들여다 본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입니다.
가문의 영광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한국의 전통 가풍과 가문에 대하여
둘러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어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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