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5일 수요일

매화香에 취해 봄날은 간다


꽃샘추위가 물러나면서 봄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매화의 개화(開花)가 반갑다. 현재 하동, 광양, 해남, 양산 등 남부지방에서는 매화가 속속 꽃을 틔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원래 매화의 개화 시기는 3월 중순에서 4월 초이지만 올해는 잦은 꽃샘추위 때문에 평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1주일 정도 늦었다. 늦게 찾아왔기 때문인가. 올 봄 매화를 찾는 탐매(探梅)꾼들의 발길은 더욱 분주하다. 구제역 여파로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 해남 땅끝매화축제 등 대부분의 매화축제가 취소된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매화를 보기 위해 남부지방으로 몰려들고 있다. 광양시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 27일 단 하루에만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을 방문한 사람이 7만6000여명에 달했다.


“매화 중의 으뜸은 古梅”

매화는 장미목에 속하며 한국·일본·중국 등에 분포하는 높이 5~10m의 나무다. 매화의 열매는 사람들에게 건강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는 매실이다. 보통 매화를 흰색의 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매화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학술적으로 따져서 매화의 종류를 가리려고 하면 복잡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흔히 매화 애호가들은 꽃의 색깔에 따라 매화를 크게 백매(白梅), 청매(靑梅), 홍매(紅梅) 세 가지로 분류한다. 백매는 꽃잎이 하얗고 꽃받침이 붉은 종이며, 청매는 하얀 꽃잎에 푸른 기운이 도는 종으로 꽃받침이 녹색이다. 홍매는 꽃잎과 꽃받침이 모두 붉은색이다. 홍매 중에서도 붉은색이 유독 진한 매화는 흑매(黑梅)라고도 불린다.

현재 섬진강 부근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매화 대부분이 외래종이다. 외래종은 국산 매화에 비해 수명이 짧고 향이 약한 편이다. 꽃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품격 또한 국산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매화 애호가들은 거리를 수놓는 젊은 매화 군락보다는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국산 고매(古梅) 감상을 더욱 즐긴다. 일반적으로 수명이 150년을 넘긴 매화를 고매라고 부른다. ‘매화 삼매경’에 빠진 애호가 김환기(58)씨는 “매화 중에서도 으뜸은 고매다. 굽이치는 나무의 수세가 힘차고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젊은 매화에서는 볼 수 없는 고매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좋은 고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나선다고.


호남의 5매를 아십니까

보통 매화 하면 떠올리는 곳은 강변을 따라 매화 군락이 펼쳐진 섬진강 부근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매화농원이 있는 해남을 떠올린다. 수많은 매화 속에 푹 빠져 봄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지역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와 정체가 끊이지 않는 교통상황이 단점이다. 좀 더 한적한 곳에서 매화를 관조하고 싶다면 전남 담양이 매력적이다. 담양은 짧은 동선 내에서도 충분히 매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홍매가 유명하다. 호남 오매(五梅) 중 하나인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가 대표적이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도 매화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곳 중 하나다. 선암사에는 약 50여그루의 고매가 향을 내뿜고 있다. 이 중에서도 압권은 무우전(無憂殿) 돌담길에 있는 선암매(仙巖梅·천연기념물 제488호)다. 선암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로 약 630년 정도 된 고목이다.

매화는 분재 쪽에서도 애호가들이 형성돼 있다. 매화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중왕’이라는 평을 받는 꽃이다. 애호가들은 “모름지기 매화 분재를 해보지 않았으면 분재 해봤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분재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곁에 두고 매화를 감상하고 향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로 분재를 찾는 시기는 개화 시기보다 한두 달 정도 이른 1월에서 2월 사이. 대부분의 판매가 이때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가격은 개당 30만~40만원 정도다. 충북 청원군 남이면의 분재전문업체 새솔분재원 이상욱 대표는 “1월에서 2월 사이에 매화 분재를 찾는 사람은 전체 손님 중 약 20~30%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분재 애호가층은 매우 얇은 편이다. 대부분의 판매가 1~2월에만 반짝할 정도다. 반면 이미 분재가 대중적 문화로 자리 잡은 일본의 경우 매화 분재의 종류가 200여가지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분재 애호가도 늘어

분재라고 해서 야생매화에 비해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매화를 재배한 뒤 화분에 옮겨심기 때문에 사람의 손이 많이 간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덕분에 분재는 야생 매화와는 달리 재배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사람의 취향이 반영될 수 있다. 분재를 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할 점도 없다. 오히려 다른 분재에 비하면 매화는 관리가 용이한 편이다. 늘어나는 사람들의 관심만큼 매화의 개체수도 증가하고 있다. 사실 과거에는 매화의 대부분이 주로 선비들이 감상을 목적으로 사랑방, 누각, 정자 부근에 심었던 고매였다. 그래서 개체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탐매꾼들이 늘면서 이를 관광화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또한 매실이 건강식품으로 점점 각광을 받으면서 매화나무의 재배 면적이 늘고 있다. 반면 매화 애호가들이 아끼는 고매는 줄어들고 있다. 국가에서도 이를 안타깝게 여겨 2007년 강원도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栗谷梅), 전남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등 6그루의 고매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바 있다. 한국매화연구원의 안형재 원장은 “예전에 선비들이 고택에 심었던 고매가 후손들의 관리 소홀로 죽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탐매여행 가는 게 여의치 않다면 5만원권 뒷면의 월매도(月梅圖)를 감상할 수도 있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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