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0일 화요일

파리의 카페 ― 하나의 세계관

좁은 집에 사는 파리지앵들, 카페를 거실 응접실로 애용
대학·서점 많은 파리 남쪽엔 예술가 북적이는 유명 카페들
그곳 테이블 앉아 바깥 볼 때 카페도 파리도 나의 것이 돼

파리 시민 대부분은 호텔 방보다 조금 더 큰 아파트에 산다. 그래서 집에는 따로 서재나 손님을 접대할 공간이 없다. 자연스럽게 가까운 카페를 이용한다. 파리에만 카페 1만2000여 곳이 있다. 카페는 파리지앵들의 거실이자 응접실이다. 여기에 오면 냉난방이 제공된 환경에서 책을 읽고 글도 쓸 수 있다. 커피 한 잔은 사교의 매체이자 고독과 독서의 동반자다. 일반적으로 커피나 차, 디저트를 즐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간단한 식사를 위해서도 적합하다. 카페는 동네마다 있고 보통 온종일 영업한다. "내가 가고 싶을 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곳에서 먹는다"는 파리지앵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다. 보통 자신만의 카페가 있고, 웨이터들은 단골손님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한다. 이곳의 서비스는 느리다. 하지만 여기서는 빨리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먹는 게 중요하다. 식사를 하다가 남은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 치즈를 주문하고, 또 남은 치즈를 끝내기 위해서 와인을 더 주문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치적·사회적으로 혼란했던 20세기 초반 파리에 카페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집회 허가를 받으려면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그래서 그런 절차가 필요 없는 카페에 사람들이 모이고 종종 토론이 이루어졌다. 정치와 철학이 논의되고 문학이 창작되었으며 예술적 아이디어와 영감의 발표 현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레닌과 엥겔스가 더 좋은 세상을 꿈꾸었고, 카뮈가 '이방인'을 썼으며, 사르트르와 생텍쥐페리·헤밍웨이는 삶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겼다. 이곳을 아지트 삼았던 작가들은 새로운 작품을 낼 출판사를 찾았고, 피카소와 세잔은 새로운 전시를 계획했다. 파리의 카페들은 수많은 문학에서 다루어졌고 회화 소재가 되었으며, 공연의 배경이 되었다. 이런 전통을 바탕으로 파리의 카페들은 전 세계 카페 문화의 근본을 만들었다.

파리의 유명한 카페들은 센강의 남쪽에 많다. "북쪽(La Rive Droite)은 소비하고 남쪽(La Rive Gauche)은 생각한다"는 표현처럼 남쪽에는 소르본대학을 비롯하여 많은 도서관과 서점이 있다. 그리고 그런 철학과 문학, 예술적 분위기의 중심에 카페 테이블이 있다. 이들에게 카페는 소비하는 곳이 아니고 생각하는 곳이다. 카페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스스로 지식인이 될 권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공간인 것이다. 여기에는 고뇌, 유머, 슬픔, 낭만, 유혹과 같은 인생의 언어들이 존재한다. 지금도 카페를 사랑하던 사람들의 에피소드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카페는 저마다 고유의 인생을 가진 듯하다. 파리지앵들의 라이프가 바뀌듯 오늘날 카페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유명 카페들은 현지인들 못지않게 관광객들로 붐빈다. 철학과 문학과 예술이 논의되는 과거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처럼 그 시절로 돌아가 그 분위기와 지성에 취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하지만 또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 간직했던 그런 지성과 꿈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가? 카페들의 풍경이 변한 것처럼 나 자신도 변하지는 않았는가?

어둠이 질 무렵 가로등이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다른 도시의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는 기능을 위해 설치되었다면, 파리의 가로등은 건물과 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기 위해서 섬세하게 배치되었다. 파리의 카페는 이 무렵에 가장 아름답다. 카페에는 빛이 많다. 인근 가로등과 카페의 노란 조명이 어울려 싱커페이션(syncopation)을 이룬다. 과연 '빛의 도시(La Ville Lumi�re)'답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도시다. 특유의 섹시함과 로맨틱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풍경 중 하나가 길모퉁이마다 있는 빨간 채양의 카페들이다. 하지만 도시 경관 중에서 으뜸은 오히려 카페 안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다. 거리를 바라보면 멋쟁이 파리지앵들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속으로 돌아간다. 정말 이 도시에서는 행인들도 아름다운 경관의 일부가 된다. 그들의 모습에서 문학과 감성, 패션과 트렌드 그리고 스토리를 읽는다. 그런 즐거움 속에서 어느 순간 나만의 세계로 몰입된다. 카페는 고객들로 붐비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다. 예술적 순간, 감각적 순간이 느껴지고 곧 철학적 사고로 이어진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파리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읽고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카페에 앉아 있으면 이 도시가 나에게 회답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완전한 '내'가 된다. 카페는 하나의 세계관이고 나의 보헤미아다.

'이 순간만큼은 저 여인은 나의 것이다. 이 카페도 나의 것이다. 파리도 나의 것이다.'―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able Feast)' 중에서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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