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소식(蘇軾)의 '自題金山畵像(자제금산화상)

心以已灰之木 (심이이회지목·마음은 이미 다 타버려 재가 된 나무 같고)
身如不繫之舟 (신여불계지주·이 몸은 매어놓지 않아 정처 잃은 배와 같구나)
問汝平生功業 (문여평생공업·묻노니 네 평생의 업적은 어디에 있는가?)
黃州惠州儋州 (황주혜주담주·귀양지 황주, 혜주, 담주)



이 시는 그가 해배(解配·유배에서 풀려남)되고 상주로 오던 도중 금산에 들렸을 때 이공린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에 써 넣은 시다. 그 스스로 마지막을 예상하고 그의 일생을 정리한 것이다. 황주, 혜주, 담주가 어디인가, 바로 그의 귀양지다. 이 멋진 사내의 일생을 요약하니 귀양지 세 곳이다. 얼마나 황망한가.

송(宋)나라 동파(東坡) 거사 소식(蘇軾)의 '自題金山畵像(자제금산화상)'이다.

동파는 시·서·그림·음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타의 추총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밝지 않은 곳이 없었던 소위 팔방미인이었다. 문학 작품속에 철학적 내용을 담아 문학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적절한 비유와 기발한 상상, 의표를 찌르는 내용 등으로 문학의 품격을 높였다.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이해가 있었으며 불도(佛道)에 귀의하여 그 나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정치에서도 높은 식견을 보여준 사내로 중국 인물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 학문을 익힌 후 과거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여 당대의 명신인 구양수로부터 '30년후에는 나를 일컫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는 찬사까지 듣고 시작한 환로(宦路·벼슬길)는 격렬한 변법논쟁과 신구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인 부침을 거듭하면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재기만 보여준 채 승진과 좌천, 그리고 유배로 이어졌고, 끝내는 귀양길에서 돌아오는 도중 상주에서 그의 삶을 마감했다.

동파의 혜안을 알려주는 이야기 하나다. 그가 푹푹찌는 더위에 오랑캐만 거주한다는 담주(해남)로 귀양갔을 때 강당좌(姜唐佐·해남 최초로 진사가 됨)란 사람에게 글을 가르쳤는 바 그가 과거를 치르기 위해 떠나면서 시 한 수를 청하자, 소식은 '바다가 언제 지맥을 끊은 적이 있더냐? 너 지금은 포의의 몸이나 반드시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滄海何曾斷地脈, 白袍端合破天荒)'라는 두 구절을 써 주며 진사 시험에 붙으면 나머지 두 구절을 써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후에 강당좌가 진사가 되었을 때는 소식은 이미 구천(九泉)으로 떠난 뒤였다. 그리하여 동생 소칠이 이어서 시를 완성했다.

'금의환향한 그대 모습 훗날 많은 이들 보았지, 처음 그댈 믿고 알아본 동파의 안목 영원하여라(錦衣他日千人看, 始信東坡眼力長)'

이런 혜안이 있었으니 그 스스로 '금생에서 읽은 책은 이미 늦다(書到今生讀已遲)'고 말을 한 것 아니겠는가.

요설을 한 마디 덧붙인다면 그가 요새 태어났더라면 소위 '세프'로서도 크게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험한 귀양지에서의 생존본능에 물성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 동파육, 복요리 등 많은 훌륭한 음식을 개발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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