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9일 화요일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 Emily Dickinson -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 Emily Dickinson -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We slowly drove--He knew no haste
And I had put away
My labor and my leisure too,
For His Civility--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strove
At Recess--in the Ring--
We passed the Fields of Gazing Grain--
We passed the Setting Sun--
We pas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A swelling of the Ground--
The Roof was scarcely visible--
The Cornice--in the Ground--
Since then--'tis Centuries--and yet
Feels shorter than the Day
I first surmised the Horses Heads
Were toward Eternity--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기에
- 에밀리 디킨슨 -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기에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어 주었다.
마차에는 우리들과
「불멸」만이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몰고 나갔다--그리 급한 일이 없기에
그리고 나는 내 노역(勞役)과 내 여가를
집어치웠다
그의 정중함에 보답하여.

우리는 지나갔다 아이들이 원을 이뤄
씨름하며 노는 학교를,
우리는 지나갔다 응시하는 곡물의 들판을,
우리는 지나갔다 지는 해를.

우리는 땅이 부풀어 오른 듯한
집 앞에 잡시 머물렀다
지붕은 전혀 보이지 않고
박공은 둔덕일 뿐.
그 이후 몇 세기. 그러나 매 세기가
짧게 느껴진다 내 처음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하고 있음을 추측하던 그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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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Death: “죽음”을 의인화 했다.
  • put away: “집어치우다”.
  • in the Ring: “원을 이뤄”. 
  • Cornice: “박공”.
감상과 해설
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것입니다. 디킨슨은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혁신적인, 가장 보수적인 불가사의한 시인입니다. 1830년 12월 10일 미국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의 앰허스트 Amherst에서 변호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7세에 사우스 해들레이 South Hadley라는 중학교 과정의 여학교에 입학했으나 그 학교의 광신적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중퇴하여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23세가 되어서야 당시 국회 의원이 되어 워싱턴에 가 있던 부친을 방문하러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잠시 부친 곁에 머물다가 귀로에 필라델피아의 옛 친구를 방문하여 약 2주일 동안 머무르는데 여기에서 워즈워드 Charles Wadsworth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그와 짝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짝사랑이어서 구체적으로는 별일이 없었고 앰허스트로 돌아온 그녀는 거의 두문 불출 은둔자의 생활을 하면서 56세의 일생을 마치고 1886년 5월 15일에 사망했습니다.

이와 같이 외형적으로는 담담하고 변화 없는 일생을 보낸 대신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지나가는 온갖 상념을 모두 시로 엮어 놓았음이 그녀의 사후(死后)에 드러났습니다. 그녀가 숨을 거둔 후, 유품을 정리하던 그녀의 여동생은 한 궤짝 속에 차곡차곡 챙겨진 자작시의 원고 뭉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이 원고 뭉치를 다른 유품과 같이 태워 버리기 아깝게 느껴저서 이를 보관했다가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이를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녀의 글씨가 너무 조잡하고 시의 내용이 난해해서 이를 전부 해독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또 원고를 정리하던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는 바람에 그녀의 시 1775편이 모두 수집되어 하버드 대학판으로 출판된 것은 1955년이나 되어서였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시가 1775편이요, 편지가 1049통이고, 산문이 124편이나 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그녀가 살아 생전에 발표한 것은 시 7편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인간정신을 시장에 내놓아 파는 것은 경매 행위나 진배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퓨리탄 고장에서 엄격한 퓨리탄 가정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으므로 그런 속물 근성에 물들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시의 주제는 주로, 자연, 사랑, 신, 죽음, 영원 같은 것에 관해서입니다. 그 중에서 여기서는 죽음을 주제로 한 시 한편만을 소개합니다.

디킨슨은 죽음을 늘 예감하면서 살았고 그 죽음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위해 인간이 멈춰 설 수는 없기에 죽음이 친절히 나를 위해 멈춰주었다고 시작합니다. 죽음을 의인화해서 친절한 마부에다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 마부가 끄는 마차에는 마부인 죽음과 화자 “나”와 불멸만이 타고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죽음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멸과 영원이라는 세계를 향하고 있음을 디킨슨은 꼭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급할 것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화자 "나"도 그 죽음의 정중함에 보답하고자 노동과 여가를 집어던지고 죽음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죽음의 마차는 어린 시절을 거치고 청년시절을 거쳐 노년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을 학교와 응시하는 곡물의 들판과 지는 해라고 하는 이미져리를 가지고 나타냈습니다. 그렇게 거칠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무덤 앞에 와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덤에 머무는 기간은 “잠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원히 그 무덤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처음 죽음의 마차를 타고 영원을 향해 떠나고 있다고 막연히 추측하던 그날 보다는 훨씬 이제는 그 날이 짧게 느껴진다고 디킨슨은 실토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때를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녀는 조금도 그 죽음에 대해 원망하거나 험상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죽음도 정중하고 친절하지만 죽음은 다만 그녀를 태우고 갈 마부일 뿐이고 정작 그 마차에 타는 손님은 그녀와 불멸(영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송곡이 울리는 가운데 저 멀리 떠나가는 슬픈 행렬이 아니라 실로 결혼 행진곡이 울리는 가운데 저 영원한 세계로 결혼하려고 들어가는 한쌍의 부부가 그 마차에 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도 실은 그 자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하면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모릅니다. 죽음의 마부가 말머리를 영원을 향해 돌려놓았지만 그것은 절대로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불멸과 그녀가 함께 혼레를 올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병일의경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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