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일 토요일

55년생 여고 동창들의 최대 관심사, 연금 아니고 이것 여성 노년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기술, 옛 친구 새로 사귀기

 화려한 고교 동창 인맥을 자랑하는 50,60대 남자들은 드물지 않다. 힘센 고위직 관료나 기업인과 고교 선후배 사이여서 업무상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는다. 왠지 씁쓸하다. 그들의 끈끈함이 누군가의 불이익으로 이어졌을 것 같아서다.


이 땅의 여성들은 어떨까? 남성들만큼 찐한 고교 동창간 우정에 기대어 사회 생활을 할까? 통계가 없으니 잘 모르겠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강고하게 지속된 나라라서 여성들이 기대할 수 없던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내 경우, 그저 외따로 떨어진 채 사회 생활을 한 축에 속한다.

다시 만난 여고 동창생들

여고를 졸업한 지 거의 50년. 광화문통에 있던 학교가 강 건너 우리 동네로 이사했다는 걸 아는 정도로,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나다. 올해 봄, 어쩌다 여고 동창 모임에 나갔다.

동기들이 조직한 <서양미술사> 강좌였다. 팬데믹으로 2년 넘게 닫혔던 동창회관이 다시 열린 터라 40여 명이 모여들었다. 가을 학기엔 <오페라 캐릭터를 통해 본 유럽문화사>란 격주 강좌가 열리고 있다.

강사는 이용숙 음악평론가. 첫 두 꼭지는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양극단의 캐릭터가 영화와 뮤지컬과 심리학에서 어떻게 쉴 새 없이 변주되고 재해석 되고 있는지에 관해 들었다. 간간히 관련 영상 클립을 본다. 귀에 쏙쏙 들어박힌다. 르네상스와 근현대 유럽 풍속사까지를 종횡무진하며 60대 청중을 초집중하게 만드는 강의다.

김밥을 나눠먹는 뒷풀이가 이어진다. 동기동창인데도 처음 보는 친구들이 꽤 많다. 너나없이 비축한 약간의 군살과 숨길 수 없는 눈가 주름, 우린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며 어색함을 녹인다.

여고시절, 난 열등감이 많았다. 가난했고 성적은 중하위권에 수포자였다. 물리, 화학, 지학은 나를 괴롭히려 존재하는 과목이었다. 사투리 때문에 가벼운 따돌림도 겪었다. 학교 가기가 싫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곤 했다. 졸업 후 여고시절은 내 기억에서 지워졌다. 어쩌면 다크 에이지였던 사춘기를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삭제했던 걸지도.
 
여고시절 친구들, 50년 만에 만나도 "얘, 쟤"가 단박에 튀어나오는 사이가 된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지로서 새로 사귀며 돕는 즐거움을 표현하고 싶다.
▲ 아주 오래된 새 친구들  여고시절 친구들, 50년 만에 만나도 "얘, 쟤"가 단박에 튀어나오는 사이가 된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지로서 새로 사귀며 돕는 즐거움을 표현하고 싶다.

다시 만난 옛 친구들은 새 친구들이다. 내가 그렇듯이 그들도 50년 전의 그녀들이 아니다. 전업 주부로 살았든, 직장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하며 살았든, 우리 모두는 각자의 파란만장을 버텨냈다. 직장만큼이나 빡센 수행 커리큘럼이었던 결혼 생활. 나만 그렇게 느꼈을까?

결혼으로 만난 남편 집안과의 문화적 충격에 대처하며 우리들은 화학적 결합에 이르는 지혜를 어떻게든 터득해 냈을 것이다. 한편, 평균 두 아이의 임신과 출산 이후 20~30년에 걸친 양육만큼 각자의 삶을 변화시킨 게 있을까? 결혼의 가장 놀라운 부분은 자신의 안위보다 누군가의 안위가 더 중요해지는 마법을 체험하게 된다는 거다. 엄마, 또는 부모라는 배역이 아니면 거의 경험하기 힘든 '스스로 낮아짐'이랄까.
 
우린 연결될수록 건강하다


여고 졸업 후 뛰어든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달라졌다. 지금 누군가는 돈이 많고 누군가는 돈이 적다. 누군가는 잘 나가는 아들딸을 자랑하고, 누군가는 가만히 듣는다. 누군가는 퇴행성 관절염을 호소하고 누군가는 극강의 동안 미모를 내뿜는다. 누구든지 어떤 부분은 성공했고 어떤 부분은 실패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시 함께 불러 앉힌 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생애 최대의 과제인 나이 먹기를 앞두고 있어서다. 누구든 평등하게 늙어가고 있어서 유쾌하다. 동지애가 발생하는 시점이다.

이젠 누구도 더 이상 자신의 행복이나 행운을 과장 홍보하지 않는다. 몇몇은 아들딸을 남부럽잖게 키우기엔 성공했으나 그들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했음을 고백한다. 암 생존자인 친구는 투병 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부동산 재테크 능력이 뛰어나 부러움을 샀던 그녀, 항암제 투여기간 중, 돈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단다.

"돈을 모으려고만 했지 한 번도 돈을 써보지 못한 게 후회됐어. 돈이란 건 움켜쥐고 있는 만큼 다 내 것인 게 아니야. 쓰는 만큼만 내 돈이겠더라고."

그래서 그 친구는 친척, 친구들에게 온라인 쇼핑 택배로 자잘한 선물을 보냈다. 이런 저런 명분으로 밥을 샀다.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NGO에도 정기 후원을 시작했단다. '남보다 먼저 큰 병을 앓은 이의 지혜'라는 말은 헛말이 아니었다.

베이비부머인 우리를 덮치려는 재앙에 대한 토론도 피할 수 없다. 시댁과 친정 부모 부양에 나름 애썼지만, 자식들에겐 부양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낀 세대에게 창궐하는 노후염려증이다. 이래저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지금 서명해 둬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지난 6월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의 귀추에도 너나없이 관심을 갖는다. 한편, 최대 현안은 여성 평균 수명 90까지 긴 여정을 채울 콘텐츠가 무엇이어야 할지다.

열띤 분위기를 식힐 겸, 나는 이른 저녁에 가기 좋은 혼술 이자카야 정보를 구한다. 제각각 현장 답사 후 단톡방에 올리기로 한다. 홀로서기의 정보력은 역시 여럿이서 힘을 합하는 게 최선!

연금보다 근육이 더 노후 복지에 치명적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 유지 꿀팁을 전수받는다. 용감하게 혼자서 식당 삼겹살에 도전한 친구의 '무용담'에 모두들 부러움과 감탄을 연발한다. 60대 후반으로선 쉽지 않은 쾌거라서다.

여고시절 앳된 모습은 사라졌지만 우린 지난 시간동안 진화했다. 60갑자 한 바퀴를 돌아 꽃처럼 아름다운 화갑(華甲)까지 치렀다. 한 친구가 말한다.

"젊었을 때 내 안에 들끓던 억울함도 원망도 어디론가 사라졌어. 참 신기하지. 미워죽겠던 남편에 대한 좋은 기억만이 남았다는 게. 미칠 것 같던 결혼생활이, 지금 생각해 보면 고강도 수행 프로그램 같아. 이번 생에서 겪고 배워서 통과해야할 그 무엇이랄까."

다른 친구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60년을 살고 났더니, 이젠 모든 게 좀 담담해. 가족들이 너무 사랑스럽지도 않고 너무 밉지도 않고. 그저 적당히 사랑하게 되더라. 어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던데, 난 절대 아니야. 다시 한 번 그 난리 블루스를 벌여야 한다면, 너무 힘들어. 젊은 건 한번이면 족해."

다들 끄덕끄덕. 그렇게 우리는 아주 오래된 친구를 새로 사귀기 시작한다. 서로의 자잘한 성취를 칭찬하고 아픔을 나누기로 한다. 한 생애의 세 번째 30년을 함께 할 동지들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혼자서 나이 먹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 것 같다. 심지어 재밌어지겠지. 옆 친구가 말한다. 우린 연결될수록 건강하다고. 정말 그렇다.

2020년 9월 28일 월요일

일생에 한번 보기 힘든 신비로운 대나무 꽃 ‘활짝’

 경남 진주-창원 국도변에서 왕대 1000여본 개화


경남 진주 산림바이오소재 연구소는 8일 국도 2호선인 진주-창원 국도변에서 대나무 왕대 1000여 본이 일생에 한 번 보기 힘들다는 대나무 꽃을 일제히 피웠다고 밝혔다.

국내에는 5속 18종의 대나무 종이 분포하며 면적은 약 2만2000ha에 달하지만 대나무의 꽃을 보는 것은 매우 어려워 ‘신비의 꽃’이라고 불린다.

대나무 꽃은 특성과 발생이 신비롭고 희귀해 예로부터 대나무에 꽃이 피면 국가에 좋은 일이 발생할 징조라고 해 희망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대나무 꽃이 핀 사례는 1937년 경남 하동의 왕대림, 2007년 경북 칠곡의 솜대림, 2008년 경남 거제 칠전도의 맹종죽림, 2012년 경남 진주-사천휴게소 도로변 왕대림, 2017년 경남 창원 솜대림, 2019년 전북 정읍·순창, 강원 영동의 대나무림 등이다.

대나무는 꽃이 피기 시작하면 기존에 자라고 있던 대나무 줄기와 지하로 뻗은 뿌리가 완전히 죽게 된다. 이후 뿌리에서 숨은 눈이 자라면서 다시 재생되지만, 꽃이 피기 전과 같은 상태로 대나무 숲이 회복되는데 10여 년 이상이 걸린다.

대나무 개화의 원인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관련 학설로 60∼120년 만에 핀다는 주기설, 특정한 영양분이 소진돼 발생한다는 영양설 등이 있다.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손영모 소장은 “씨앗이 아닌 땅속 뿌리로 번식하는 대나무가 꽃이 핀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며 “향후 대나무 꽃이 피는 숲을 대상으로 입지환경, 영양상태,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개화 원인을 밝혀냄과 동시에 건전한 대나무숲 관리를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진주=뉴시스]

2020년 6월 12일 금요일

길 路

남송(南宋)의 유명 시인 육유(陸游)가 길을 묘사한 시구는 퍽 유명하다. 산과 물이 계속 겹쳐지는 경우를 그렸다. "산중수복의무로(山重水複疑無路)"다. 산과 물[山水]이 줄곧 이어져[重複] 더 이상 길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앞부분은 달리 '산궁수진(山窮水盡)'으로 적기도 한다. 산길이나 물길이 다 막힌 상황이다. 모두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든 상태, 궁지에 몰린 경우다. 다니기 힘든 길인 험로(險路)에 갇힌 사람의 형편이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3] 길
길에 관한 중국인의 심사는 복잡하다. 우선 다니기 쉬운 길에 집착한다. 평평(平平), 평로(平路), 평탄(平坦), 평전(平展), 탄탄(坦坦), 대도(大道), 대로(大路) 같은 단어가 그 맥락이다. 좋은 길에 관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어려운 길을 피하려는 심리도 강하다. 주로 산길이 그 대상이다. 바위 등이 많아 다니기 힘든 길은 기구(崎嶇)다. 험준(險峻)도 마찬가지다. 험산준령(險山峻嶺)도 발길을 막는다. 낭떠러지인 현애(懸崖)에서는 한숨부터 나온다. 절벽(絶壁) 앞에 서도 그렇다.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좁고 위험한 길은 애로(隘路)다. 군사(軍事)에서는 가장 피하는 길이다.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면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다. 진퇴유곡(進退維谷), 진퇴양난(進退兩難)이 그 성어다.


중국이 안팎으로 시련이다.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이라는 과정을 두고 벌어질지 모를 책임 문제

등 악재의 연속이다. 몸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인데 어느덧 서산에 해가 지는 형국인지 모른다. 산과 물에 발길이 막힌 시인 육유의 눈에 문득 들어온 정경이 있다. "버드나무 그늘 아래 핀 꽃, 그리고 마을 하나(柳暗花明又一村)." 궁색한 지경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출로(出路)를 의미한다. 어려운 상황에 빠진 중국이 어떻게 새 길을 찾을지 주목거리다.


조선일보

2020년 5월 29일 금요일

José Feliciano, Que Será, Festival de Viña 2006





Uno de los más grandes artistas latinos, el maestro JOSE FELICIANO vuelve al Show del Festival Internacional de la Canción de Viña del Mar 2006...Encuentra más vídeos de JOSE FELICIANO en nuestro Canal Histórico...Recuerda, somos el Canal Histórico del Festival Internacional de la Canción de Viña del Mar...Suscríbete y síguenos 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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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estivaldevinachile.com

"Las cintas originales del Festival Internacional de la Canción de Viña del Mar se encuentran resguardados en el Archivo Histórico Patrimonial de la I. Municipalidad de Viña del Mar, Chile".



Che Sera / Jose Feliciano




Paese mio che stai sulla collina
언덕위에 있는 나의 마을...

Disteso come un vecchio addormentato,
잠들어 있는 노인처럼

La noia, l'abbandono il niente son la tua malattia,
허무함와 지루함으로 병들어 있구나

Paese mio ti lascio io vado via.
나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든 되겠지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내 인생이 어찌 될지 그 누가 알겠어?

So far tutto o forse niente da domani si vedra'
어찌 될런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꺼야

E sara', sara' quel che sara'.
무엇이든 되긴 될테니까


Gli amici miei son quasi tutti via
많은 내 친구 들이 떠나갔어

E gli altri partiranno dopo me
나머지 친구들도 나를 따를테고

Peccato perche' stavo bene in loro compagnia
안타깝게도, 함께 즐겼던 친구들 이제는 모두가...

Ma tutto passa tutto se ne va.
인생사란게 지나쳐 가고, 계속 되어지는 그런 것이야.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든 되겠지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내 인생이 어찌 될지 그 누가 알겠어?

Con me porto la chitarra e se la notte piangero'
나의 기타는 나와 함께 할테고 밤이 되면 울릴거야

Una nenia di paese suonero'.
고향의 자장가가 되어서 말이야



Amore mio ti bacio sulla bocca,
내 사랑, 당신께 입을 맞춰요

Che fu la fonte del mio primo amore
첫 사랑 당신께

Ti do l'appuntamento come e quando non lo so,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만날런지 알 수는 없지만

Ma so soltanto che ritornero'.
내가 돌아오리란 건 확신해요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든 되겠지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내 인생이 어찌 될지 그 누가 알겠어?

Con me porto la chitarra e se la notte piangero'
나의 기타는 나와 함께 할테고 밤이 되면 울릴거야

Una nenia di paese suonero'.
고향의 자장가가 되어서 말이야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든 되겠지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내 인생이 어찌 될지 그 누가 알겠어?

So far tutto o forse niente da domani si vedra'
어찌 될런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꺼야

E sara', sara' quel che sara'.
무엇이든 되긴 될테니까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든 되겠지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내 인생이 어찌 될지 그 누가 알겠어?

So far tutto o forse niente da domani si vedra'
어찌 될런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꺼야

E sara', sara' quel che sara'.
무엇이든 되긴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