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4일 금요일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조망 효과' 경험하면 인생관 바뀌어
스마트폰에 빠져 삶 허비할 때 아니야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요즘은 해가 저녁 늦게, 그리고 오래 떨어져서 참 좋다. 화실로 가는 길에 석양을 마주하며 듣는 클래식FM의 음악도 기막히다. 슈베르트의 가곡 '저녁노을(Abendrot)'이 흘러나온다.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의 노래가 최고다. 바리톤의 저음은 저녁노을의 '경외감'을 전달하기에 너무 무겁다. 소프라노는 반대로 너무 들떠 있다. 슈베르트 가곡은 피아노의 선율을 함께 느껴야 한다. 피아노가 스스로 노래하기 때문이다. 목소리와 피아노가 서로 다른 노래를 하는 것 같지만 묘하게 어울리며 흘러간다.

여수 여자만(汝自) 갯벌 저편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저녁노을에 그저 하염없이 앉아 있다. 최백호의 노래 '부산에 가면'도 하염없이 앉아 듣기에 참 좋다. 피아노의 멜로디와 가수의 노래가 제각기 진행되는 에코브리지의 작곡이 참으로 빛난다. 피아노의 반복되는 리듬에 중독될 즈음이면 최백호가 노래하는 가사가 비로소 귀에 들어온다.

'어디로 가야 하나, …오래된 바다만, 오래된 우리만….' 최백호의 목소리는 연신 떨린다. 이쯤 되면 최백호와 프리츠 분더리히는 동급이다.

여수도 이제 노래 바꿀 때가 됐다. 그동안 '여수 밤바다'를 너무 많이 틀었다. 주말 밤이면 아저씨까지 술 취해서 떼로 몰려다니며 '여수 밤바다'를 불러댄다. 가사도 딱 '여수 밤바다'까지만이다. 나머지는 죄다 '라라라' 경음악이다. 듣는 내가 더 답답하다.

'하염없음'은 시간이 정지되고, 유체 이탈처럼 '또 다른 나'가 공중 부양하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경험이다. 철학적 '자기 성찰'이란 심리학적으로는 '경외감'과 '하염없음'으로 야기되는 '인지적 전환(cognitive shift)'이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이 엄청난 대자연 앞에서 내가 갖고 있는 현재의 인지 체계로는 그 어떠한 설명과 해석도 불가능하다. 남은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내 인지 체계를 통째로 바꾸는 일이다. 인간의 모든 미학적(美學的) 경험은 이 같은 '인지적 전환'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올려다봐야 나를 본다'
'올려다봐야 나를 본다' /그림=김정운
우주선을 타고 먼 우주에서 처음 지구를 바라본 우주비행사들은 지구에 귀환한 후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미국의 작가 프랭크 화이트는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고 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만든 '10의 제곱수(Powers of Ten)'라는 9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우주비행사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화면의 관점은 공원에 앉아 있는 남녀 한 쌍을 1m 위에서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매초마다 10배씩 높아진다.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지구가 속한 은하계마저 하나의 점이 되어버린다. 오늘날 '구글 어스(Google Earth)'라는 웹브라우저를 통해 누구나 '조망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이 세상을 보는 기준은 항상 자기 몸이다. 어릴 적 그렇게 컸던 학교 운동장이 나이가 들어 찾아가보면 그렇게 작을 수가 없다. 그 넓었던 집 앞 '신작로'가 그렇게 좁을 수가 없다. 내 몸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작은 몸으로 본 세상은 크고 놀라웠다. 호기심에 가득 차 세상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성인의 몸을 기준으로 보면 죄다 시시하고, 볼품없다.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저녁노을 앞에서의 하염없음'과 같은 공간적 오리엔테이션의 변화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동반한다. 미국 텍사스 대학의 심리학자 프레드 프레빅은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는 '도파민으로 활성화되는 뇌(Dopaminergic Mind)'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도파민은 주로 '먼 공간'이나 '높은 공간'과 같은 '개인 외적 공간(Extrapersonal Space)'과 관계하는 반면,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호르몬은 손이 닿는 '주변 사람 공간(Peripersonal Space)'과 관계한다. 도파민으로 활성화되는 '개인 외적 공간'의 분석 능력이 인간 문명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구체적 맥락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와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은 '먼 곳', '높은 곳'을 조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눈을 위로 치켜뜨며 생각하는 거다. 지금 '25×9'를 암산해보라. 계산하며 당신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저절로 위를 보게 된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내 시선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주 먼 곳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서양의 성당이나 왕궁의 천장이 그렇게 높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건물에 들어서면 저절로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이때 느끼는 경외감을 통해 자발적인 '인지적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인간만 올려다본다!

자주 까먹고, 물건을 손에서 놓치고, 물을 쏟고, 오가며 문짝에 자꾸 부딪힌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 가까운 것들에 대해 둔해지는 만큼, 멀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과 탈맥락적 시선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전에는 안 머리 처박고 분노하고 한탄하며 내 한 번뿐인 삶을 허비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시간 날 때마다 멀리 봐야 한다. 올려다봐야 한다. 그래야 제한된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적 통찰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여수 여자만의 저녁 해가 오늘도 그토록 장엄하게 지는 거다.


다자필무 (多者必無)

바쁜 일상 속에서도 평온을 꿈꾼다. 일에 파묻혀 살아도 단출한 생활을 그리워한다. 명나라 팽여양(彭汝讓)의 '목궤용담(木几冗談)'을 읽었다.

"책상 앞에서 창을 반쯤 여니, 고상한 흥취와 한가로운 생각에 천지는 어찌 이다지도 아득한가? 맑은 새벽에 단정히 일어나서는 대낮에는 베개를 높이 베고 자니, 마음속이 어찌 이렇듯이 깨끗한가(半窗一几, 遠興閑思, 天地何其寥闊也. 淸晨端起, 亭午高眠, 胸襟何其洗滌也)?" 새벽 창을 여니 청신한 기운이 밀려든다. 생각은 끝없고 천지는 가없다. 낮에는 잠깐 눈을 붙여 원기를 충전한다. 마음속에 찌꺼기가 하나도 없다.

"몹시 조급한 사람은 반드시 침착하고 굳센 식견이 없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대개 우뚝한 견해가 없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강개한 절개가 없다. 말이 많은 사람은 늘상 실다운 마음이 없다. 용력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문학의 아취가 없다(多躁者必無沈毅之識, 多畏者必無踔越之見, 多欲者必無慷慨之節, 多言者必無質實之心, 多勇者必無文學之雅)." 어느 한 부분이 지나치면 갖춰야 할 것이 사라진다. 급한 성질이 침착함을 앗아가고, 두려움은 과단성을 빼앗아버린다. 다변은 마음을 허황하게 만든다. 힘만 믿고 날뛰면 사람이 천박해진다.
"지나치게 부귀하면 교만해져서 도리에 어긋나기가 쉽다. 너무 가난하거나 천하면 움츠러들기 쉽다. 환난을 지나치게 겪으면 두려워하기가 쉽다. 사람을 너무 많이 상대하면 수단을 부리기가 쉽다. 사귀는 벗이 너무 많으면 들떠서 경박해지기가 쉽다. 말이 너무 많으면 실수하기가 쉽다.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으면 감개하기가 쉽다(多富貴則易驕淫, 多貧賤則易局促, 多患難則易恐懼, 多酬應則易機械, 多交遊則易浮泛, 多言語則易差失, 多讀書則易感慨)

많아 좋을 것이 없다. 지나친 부귀는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고, 견디기 힘든 빈천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환난도 지나치면 사람을 망가뜨린다. 종일 이 일 저 일로 번다하고, 날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 일 만들고 떠들어대면 사람이 붕 떠서 껍데기만 남는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꼭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무턱대고 읽는 책은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
조선일보

2018년 8월 18일 토요일

당뇨·고혈압 동시에 오기 쉬워 … 혈관 차례로 망가져 합병증 심각

질병은 도미노처럼 진행된다. 한 가지 질환이 또 다른 질환을 부르고, 증상을 부추기며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고혈압과 당뇨병이 좋은 예다. 두 질환은 명의도 명약도 없다. ‘생활습관병’이기 때문이다. 음식 조절 실패, 흡연과 과음, 운동 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이 병을 만들고 키운다. 당뇨병과 고혈압 극복은 ‘2인3각’ 경기와 같다. 의사와 환자가 한 몸이 돼 나쁜 생활습관을 고치고 초기 증상에 대응해야 한다. 병원은 최신 치료 지침을 제공하고, 생활습관을 점검하며, 맞춤 처방을 한다. 최근 주민 밀착형 진료로 지역사회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고대안산병원 진료팀에 생활습관병의 대표적인 질환인 ‘당뇨병·고혈압 함께 극복하기’ 전략을 들었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고혈압이 생기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 절반이 당뇨병을 겪고 있고, 당뇨병 환자 중 60~70%가 고혈압 환자다. 당뇨 환자는 인슐린 저항성이 큰데 이것이 교감신경계를 강하게 자극해 혈관을 수축시킨다. 심장에서 내보내는 혈액량도 증가시켜 혈압을 높인다. 반대로 고혈압이 있는 사람도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 고혈압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비만과 운동부족이다. 이 역시 혈당을 상승시켜 당뇨병을 일으킨다. 결국 고지방·고염분식·운동부족·흡연을 하는 사람은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발병 시기가 다를 뿐이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함께 있으면 사망률이 더 높은가.

 “그렇다. 두 가지 질환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 혈관 파괴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다. 심장 주변 큰 혈관부터 망가지기 시작해 발과 손·눈 등의 미세혈관을 파괴시켜 각종 합병증을 일으킨다. 신장이 망가지고 발을 자르거나 실명하게 되는 심각한 합병증이 생긴다. 심근경색 등 혈관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할 수도 있다. 원래 고혈압 치료 기준 혈압은 140~90㎜Hg이지만 당뇨병이 같이 있으면 130~80㎜Hg를 기준으로 삼아 치료해야 한다.”

-약의 선택도 중요하다. 여러 가지 성분이 하나로 된 약이 좋은가, 각각 따로 먹는 게 좋은가.

 “기존 혈압 약은 혈관을 직접 확장시키는 성분, 혈관을 수축시키는 호르몬을 억제하는 성분, 이뇨작용을 하는 성분 등 메커니즘이 다양하다. 따라서 약을 따로 먹어야 했다. 최근에는 이런 여러 성분을 한 알로 복용할 수 있는 복합제가 출시됐다. 효능의 차이는 거의 없다. 단 약물을 여러 개 먹어야 하는 부담을 줄여 환자가 약을 먹는 데 지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작용 성분 각각의 용량을 미세하게 조절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약은 가능한 한 나중에 먹는 게 낫나.

 “최근 당뇨병 초기부터 약물을 복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처음부터 약을 적극적으로 복용했을 때 췌장에 아직 남아 있는 인슐린 분비 기능을 활성화시켜 당뇨병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또 심근경색·뇌졸중·뇌혈관질환 등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도 줄여준다고 한다. 혈압은 기준선을 넘지 않으면 생활습관 개선을 통한 치료가 우선이지만 기준선을 넘으면 높은 혈압이 혈관을 망가뜨려 합병증이 심각해지므로 반드시 약물 복용과 함께 식사요법을 해야 한다.”

-합병증이 초기부터 나타날 수 있나.

 “병이 진행돼서야 합병증이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당뇨병 진단을 처음 받은 사람의 50% 이상에서 이미 한 가지 이상 합병증이 있다. 당뇨병이든 당뇨병 바로 전 단계든 높은 혈당이 흐르면서 혈관을 손상시키므로 진단 초기부터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초기 당뇨병 환자도 관리를 엉망으로 하면 몇 개월 만에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고혈압도 마찬가지다. 고혈압 초기에도 갑자기 큰 혈관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오면 혈관을 막아 급사할 수 있다. 당뇨병이든 고혈압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관리를 해야 한다. 한 순간 방심이 바로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