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수처작주 (隨處作主)‘입처개진(立處皆眞)

  “너희가 만약 불법을 얻고자 하거든, 대장부가 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나약하게 그때그때의 처지에 따른다면 얻지 못할 것이니, 큰 그릇을 갖춘 사람이 남의 유혹을 받지 않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야만, 서있는 곳이 모두 참될 것이니라.” 어디서건 당당한 주인의 삶을 살 때만이 서 있는 곳마다 참되게 된다는 말이니, 외물에 휩쓸리는 일 없이 명명백백하고 정정당당한 삶의 주인이 되라는 가르침이다.


초의도 이 구절을 즐겨 썼다. ‘일미 선생께 올리는 글(上一味先生書)’에서 “만약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백년 인생이 한갓 수고롭기만 할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이 즐거움을 믿어 깊이 깨달음이 없다면, 다만 마땅히 그 곳에서 이를 깨달아, 마땅히 그 깨달은 바를 날마다 써서 인연이 닿는 곳에 응하여, 능히 곳에 따라 주인이 됨을 얻어, 저절로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게 될 것입니다.(若人不悟, 徒勞百年. 今於此, 無信此樂而深悟, 但當與其所悟之, 於日用應緣處, 能得隨處作主, 自然立處皆眞.)”라고 했다.

정민의 世說新語







깨달음이 없이는 인생은 도로(徒勞)의 연속일 뿐이다. 깨닫는 순간 수처작주하여 입처개진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내가 딛고 선 자리는 참된가? 8년째 암자를 떠나지 않고 독공 중이신 정연 스님의 맑은 눈빛에 초의차의 향을 품고 산을 내려왔다.

2023년 9월 2일 토요일

백병원을 떠나보내며 / 의학전문기자 홍혜걸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개원 82년만에 8월 31일부로 폐원하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 함께한 만큼 폐원의 충격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홍혜걸쇼]에서는 서울백병원의 폐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23년 4월 1일 토요일

‘하이쿠(俳句)’로 이슬 같은 삶의 현장 노래한 고바야시 잇사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최치현 숭실대 겸임교수
덧없이 짧은 인간 삶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관찰…미래는 보장되지 않기에 지금 좀 더 힘내서 살아야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진솔하게 관찰한 고바야시 잇사.
'얼굴 좀 펴게나 올빼미여 이것은 봄비가 아닌가(梟よ面癖直せ春の雨).’

지옥 같은 삶을 살면서도 끝내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시인의 시다. 이 시의 작가는 일본의 하이쿠 시인이다. 한국인에게 사랑과 희망의 감성을 전하는 세종로 사거리 교보문고의 광화문 글판에 일본 시인의 시가 걸린다. 2009년 봄 그것도 3·1절 무렵에 걸린 시다. 그 주인공은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

인간의 감각을 일깨우고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문학의 힘은 양국의 불행했던 역사도 초월한다. 이 글판은 보통 유명한 문장에서 일부를 발췌해 짧은 형태로 고쳐서 건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는 한 번에 온전하게 실렸다. 짧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시인이 53세에 쓴 작품이다. 시의 앞에 마에쿠(前句)에는 ‘비둘기가 말하기를’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비둘기가 올빼미에게 하는 말이다. 어려서 가출해 남의집살이를 한 세월을 빼면 평생을 고독 속에서 떠돈 시인은 52세에 첫 결혼을 한다.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에 봄비를 보면서 평생의 찌든 얼굴을 펴보고자 하는 다짐 같은 시다.

때가 되니 길고 길었던 추운 겨울도 지나고, 어느덧 봄비가 함초롬히 내리며 만물의 소생과 뭇 꽃의 개화를 재촉한다. 이제 기지개를 켤 계절이 돌아왔다. 삶에도 계절에도 꽃피울 일만 남았다. 다시금 희망을 노래한다.

잇사는 쉽고 친근해 잇사조(一茶調)라 불리는 독자적인 시풍을 확립했다. 그는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요사 부손(与謝蕪村)과 나란히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하이카이시(俳諧師)의 한 사람이 됐다. 하이카이시는 하이카이의 렌가(連歌)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전업작가인 셈이다. 하이카이·하이쿠를 가다듬는 사람으로 하이진(俳人)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현세에 존재하는 찰나의 순간을 도려내기 위해 언어의 칼을 가는 사람들이다.

일본은 확실히 이념보다는 감성의 나라이고 예술의 나라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일컬어지는 ‘하이쿠(俳句)’다. 한 나라의 시적 전통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케 한다. 전 국민이 시를 지으며 언어의 유희를 즐기고 있다. 일본의 유명 일간지에는 연일 하이쿠가 실린다. 아마추어를 비롯한 하이쿠 시인이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매달 수십 종의 하이쿠 월간지가 출간된다.

시인은 1000만 명이라지만 하이쿠를 향유하는 수로 따지면 전 국민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시의 나라(詩國)이다. 문학이 존재하고 시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을 살며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 그리고 남기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말이고 시이고 문학이다.

17자에 우주를 담아내는 하이쿠


▎국내 최대 수국 군락지인 부산 영도구 태종대유원지 내 태종사 일대에서 열린 ‘수국 꽃 문화축제’. 태종사 수국축제에서는 일본·네덜란드·태국· 중국·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35종 5000여 그루의 수국을 볼 수 있다.
우키요에(浮世繪)가 서구의 인상파를 자극했듯이 하이쿠는 에즈라 파운드와 같은 이미지스트들에 의해 서양 영문학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이쿠라는 일본의 전통 운문문학을 통해서 한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일본인의 특징인 일생현명(一生懸命)의 자세로 하이카이시의 삶을 산 고바야시 잇사는 덧없이 짧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해 진솔하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관찰했다.

작가는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작가가 느끼는 그대로를 본인의 감각을 통해 정성을 다해 순간의 정황을 표현했다. 얕은 감성이나 허위를 벗겨내고 대상을 관찰하고 경청하고 그 양상을 하이쿠로 표현해 진심의 세계를 열었다. 그전까지는 음풍농월과 고담준론하던 상류계층의 놀이였던 하이쿠를 서민적 대중적으로 정착시킨 일면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쿠는 일본의 짧은 정형시다. 일본 전통의 리듬인 7·5조를 바탕으로 한 5·7·5의 3구 17음인 단형시다. 본래 렌가(連歌)의 첫 홋쿠(発句)가 독립한 것이다. 렌가란 일본의 고전 시가로 두 사람 이상이 단가의 윗구에 해당하는 5·7·5의 장구와 아랫구에 해당하는 7·7의 단구를 번갈아 읊어 나가는 형식의 시다.

하이쿠는 렌가와 단카(短歌)에서 비롯된 짧은 시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야마토우타(大和歌)의 준말로 와카(和歌)라고 일본의 시를 가리켰으나 요즘은 5·7·5·7·7조의 31자의 일본 정형시이며 오늘날 단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렌가의 연의 홋쿠가 독립해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에 의해서 하이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에 이르렀다.

하이쿠에는 엄격한 음수율과 더불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 있다. 계절을 상징하는 시어인 계어(季語)와 기레지(切字)라고 불리는 구를 끊어주는 글자가 시에 포함돼야 한다. 음수율을 어겨 글자가 넘치는 것을 지아마리(字余り)라고 하며 글자가 모자라는 것을 지타라즈(字足らず)라고 부른다.

일본 시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립한 하이쿠는 5·7·5조에 의한 언어의 운율과 계어와 기레지에 의한 짧은 시이지만 마음속의 심상을 크게 펼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이쿠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대한 답은 다수 존재한다. 하이쿠 평론가 야마모토 겐키치(山本健吉)는 에세이[인사와 골계]에서 하이쿠의 본질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하이쿠는 골계다. 하이쿠는 인사다. 하이쿠는 즉흥이다.” 그 밖에 하이쿠는 사물에 의탁해 마음을 늘어놓는(寄物陳思) 시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다 말하지 않고 상상하게 한다. 여백의 묘다.

하이쿠에는 다음의 특징이 있다. 5·7·5의 운율로 읊는 정형시다. 기본으로서 계어를 넣는다. 한 군데 꼭 기레지가 있다. 여운을 남긴다. 하이쿠의 주요한 특징인 17자의 엄격한 정형의 틀에 계어와 기레지가 들어감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최대한 이끌어낸다.

하찮은 것들에서 찰나의 순간 포착

계절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시인은 끊임없이 자연을 살펴보면서 관찰해야 한다. 그 계절에 맞는 감수성을 살리는 계절 어를 찾아야 한다. 원래 시인이란 감수성이 뛰어나다지만 계절이 바뀌는 변화의 순간을 가장 먼저 읽어낸다. 17자의 압축된 시어를 고르고 표현하는 데 긴 여운을 담아낸다. 글자는 비록 축소돼 있으나 담고 있는 내용은 우주 크기의 상상력이다. 겨우 17자로 사계절의 변화의 양상과 넓은 우주의 공간을 담았다.

계어는 상징이 되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다. 이것을 연상력이라고 해도 좋다. 또 시간과 공간을 크게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잘 끊어진 시가의 홋쿠는 ‘기레지가 있다’고 평가돼 중시됐다. 기레지는 강제적으로 구를 자르기 위해서 사용되는 조사다. 원래는 18개의 조사, 조동사가 쓰였으나 현대의 하이쿠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구의 단락에 쓰는 조사에는 ∼や(∼이여), ∼かな(∼로다), ∼けり(∼구나)가 있다.

독자는 그 순간의 휴지부 사이에 작자를 둘러싼 환경이나 작자의 사상·감정·정념·배경 등을 마음대로 상상하는 장치를 얻게 된다. 시인이 진술하고자 하는 세상이란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기술이 하이쿠라는 한정된 어휘 수로 언어에 모양과 질감을 미치는 효과를 갖는다. 게다가 계어와 더불어 구에 여운을 자아낸다.

고바야시 잇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의 서민적 풍모와 대중성이다. 그간의 하이쿠는 일반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이 아니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펼쳐지는 세계의 아주 자잘한 풍경에 빗대어서 좁쌀 같은 인정을 표현했다. 너무도 짧은 17자의 시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우주가 펼쳐져 있다. 인간의 고독, 유한한 삶에 대한 덧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인간들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고 노래할 때 고바야시 잇사는 참새·개구리·벼룩·파리 등 주변의 하찮은 것들에서 찰나의 순간을 봤으며, 그 축소된 찰나의 순간에서 드넓은 우주로 시야를 넓혔다.

‘아름답구나 창호지 문구멍으로 내다본 밤하늘의 은하수여(うつくしや障子の穴の天の川).’

병상에 누워 있던 시인은 어느 날 저녁 구멍 뚫린 창호로 놀랍게 펼쳐진 은색의 강물이 흘러가는 하늘의 강을 바라다보며 감동한다.

고바야시 잇사는 호레키 13년(1763) 겨울에는 눈에 덮이는 산골 나가노현(長野県)인 시나노(信濃)의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을 야타로라고 했다. 3세 때 어머니와 사별하고 8세에 새어머니를 맞이했다. 고아처럼 살던 잇사는 15세의 봄, 에도에 고용살이로 나갔다. 고용살이하는 곳을 몇 군데 전전하며 유랑한다. 20세를 지났을 무렵에는 하이쿠의 길을 목표로 하게 됐다. 24세에 니록구안 치쿠아(二六庵竹阿)의 문인이 돼 하이카이를 배웠다. 잇사라는 하이호(俳號)는 오차의 거품처럼 사라지기 쉬운 몸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나와 놀자꾸나 어미 없는 참새(我と来て遊べや親のない雀).’

잇사가 어린 시절의 외로움을 떠올리고 쓴 구절이다. 잇사는 일본의 고전과 한문을 배워가며 하이카이의 선생인 종장(宗匠)이 되기를 염원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29세에서 14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잇사는 나중에 [간세이 3년 기행(寛政三年紀行)]을 썼다. 하이쿠 수행을 위한 여행을 떠난다. 30세에서 36세까지 관서·시코쿠·규슈를 도는 하이쿠 수행의 여행을 하면서 만난 시인과 교류한다. 수행의 여행을 마친 잇사는 스승의 뒤를 이어 종장이 된다.

‘첫 꿈에 고향을 보고 눈물짓는구나(初夢に古郷をて涙かな)’

여행 도중 새해 첫 꿈에 고향을 보고 눈물을 짓는 구이다. 39세 때 우연히 고향에 다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졌다. 잇사는 아버지를 간병했다. 아버지는 잇사와 남동생이 집과 대지를 반씩 나누라고 유언을 남기고 한 달 정도 있다 사망한다. 이때의 모습이 [아버지의 임종일기]에 정리돼 있다. 이후 잇사가 고향에 영주할 때까지 10년 이상에 걸쳐서 계모와 동생과 재산 싸움이 계속됐다.

‘주무시는 모습 파리 쫓아 드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寝すがたの蠅追ふもけふがかぎり哉).’

아버지의 임종 전날 쓴 구이다. 잇사는 에도에서 하이쿠 강습회에 들어 지도를 받는 한편 지인과 문인을 찾아 하이쿠를 지도하고 생계를 꾸렸다.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시인으로서의 잇사의 평가는 높아져 갔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생활·생명·생명감


▎고바야시 잇사는 개구리·파리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을 주목했다.
‘저녁 벚꽃 놀이 집이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네(夕桜家ある人はとく帰る).’

잇사가 에도에 혼자 살 때다. 벚꽃 구경하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부러운 시선이다. 50세 겨울 잇사는 고향에 돌아왔다. 셋집 살이를 하고 유산 협상을 거듭하다가 이듬해 겨우 화해했다. 52세에서 28세의 기쿠(菊)를 아내로 맞아 장남 센타로, 장녀 사토, 차남 이시타로, 셋째 긴사부로를 차례로 낳았지만 모두 어려서 죽고 아내도 37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연이은 불행이다. 잇사는 혼자가 됐지만 여러 번 결혼하고 잇사의 사후 부인과의 사이에 차녀 야타가 태어났다.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世の中は地獄の上の花見な).’

아이들이 죽고 아내마저 죽고 나자 쓴 구이다. 가정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키타시나노(北信濃)의 제자를 찾아 하이쿠 지도와 출판 활동을 해 [시치반 일기] [하치반 일기] [분세이 구첩], 구문집 [나의 봄] 등을 저술하며 2만구에 이르는 하이쿠를 남겼다.

‘야윈 개구리 지지마 잇사 여기에 있다(やせ蛙まけるな⼀茶これにあり).’

잇사는 29세에 백발이 됐고 안색도 거칠고 외모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여인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암컷을 놓고 다투는 개구리 중에 약해 보이는 개구리를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잇사의 외침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약한 대중의 심금을 울린다. 병약한 장남 센타로를 격려하는 구이기도 하고 52세까지 결혼하지 못한 불우한 자신을 향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분세이 10년(1827) 카시와바라(柏原) 숙소의 대부분을 태운 대화재로 안채를 잃은 잇사는 흙으로 만든 광에 살았다. 그해 11월 19일 65세로 타다 남은 잔해더미 먼지 속에서 생애를 마감한다.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얼마나 어리석은가(盥から盥へうつるちんぷんかん).’

인생은 대야에서 대야 사이의 이동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종잡을 수가 없다, 잇사가 세상과 작별하며 읊은 사세구이다. 잇사의 하이쿠는 참새·개구리·어린이 등 약하고 작은 것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현했다. 하이쿠에는 한 번 읽어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난해한 점이 있지만 잇사의 구는 이해하기 쉽다. 마쓰오 바쿠가 약 1000구를 남긴 것과 비교하면 그의 2만여 구는 실로 대단하다. 그가 관찰한 대상은 거의 그의 붓 끝을 피하지 못하고 17자의 세계에 스틸 사진처럼 인화돼 남아 있다.

하이쿠 평론가인 야마시타 가즈미(山下一海)는 “소위 에도시대의 시인의 세 거두인 바쇼, 부손, 잇사의 구의 특징을 각각 한 글자로 나타내면 바쇼는 도(道), 부손은 예(藝), 그리고, 잇사는 생(生)”이라고 평했다. 잇사에 대한 평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잇사의 하이쿠에는 생활·생명·생명감 같은 것이 보인다고 말하며 ‘삶’에 관한 사항에 주목했다. 잇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비평가들조차 잇사 구절의 강한 생명력은 유례가 없다고 평가했다.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빌고 발로도 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봐야 ‘진짜’다. 노을이 지자 어부가 배에 불을 밝히고 물을 거슬러 뭍으로 오르고 있다.
또 잇사의 하이쿠는 인생 자체가 녹아 있다는 지적도 보인다. 오기와라 세이센스이(荻原井泉水)는 잇사에 대해 자나 깨나 하이쿠를 만들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뼛속까지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마루야마 카즈히코(丸山一彦) 또한 잇사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의식·감각을 스친 모든 것을 손에 집히는 대로 시로 읊어 내기를 계속해 하이카이 외줄기에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잇사의 작품은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게 연결돼 있다. 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바쇼는 자연으로 가고, 잇사는 사람에게 간다”고 평가했다.

잇사의 구절 생명력의 원천으로 많은 평론가가 지적하는 것이 농민 기질, 흙에 대한 의식, 타고난 야생이다. 실제 잇사가 손에 땀으로 논밭을 경작하던 것은 에도에 고용살이 나오기 이전인 15세 이전의 이야기이지만, 끝까지 농민 기질과 흙에 의식을 잃는 일은 없었다.

구리야마 리이치(栗山理一)는 잇사를 “관통하는 숙명적인 흙에 애착을 지적하고 폐색감이 커지는 사회 속에서 현저한 매너리즘화에 빠진 하이쿠계에 타고난 야생, 토착의 마음가짐으로 부딪혔다”고 평가했다. 잇사의 안에 깃들어 있던 농민 기질이야말로 그의 시 생명력의 원천으로 평가한다.

잇사는 대중화를 이뤘지만 저속화와 타락이 현저했던 하이쿠계(界)의 방식에 반발하고 타고난 강인한 야생, 지칠 줄 모르는 인간 생활 전반에 관한 관심을 원동력으로 강렬한 자아, 인간의 생생한 육성을 시에 반영시키려 시도하고 성공했다. “잇사의 삶은 고향의 흙과 깊이 연결돼 있고, 토속의 영혼을 품고, 계속해서 울부짖었으며 현세 추구의 혼란한 세상 사람으로서 시를 읊었다”는 평을 듣는다.

잇사가 노래한 분뇨·방귀 같은 주제의 시에 혐오감이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 점에서 역시 흙과 생물을 상대해 생업인 농민 혼을 찾아내며, 그것과 함께 사는 자와 공존, 공감하고 일체화해 토속적 애니미즘이 보인다는 평론가도 있다. 와타나베 히로시(渡邊弘)는 잇사 구절 세계에서 살고 사는 모든 것에 대한 공생적인 세계관에 주목하고 있다.

잇사의 하이쿠가 살아가는 것을 주제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듯한 논리나 인생론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고 있던 그대로의 희로애락을 시에 읊어 갔다. 이른바 잇사는 생활 속에서 문학을 낳고 간 것이다. 카토 슈손(加藤楸邨)은 “잇사의 작품에는 인간으로부터 방출되는 체취가 있고 단련된 것부터 감도는 생명감이 아니라 마을에서 줄지어 생활하고 있는 인간끼리 서로 부대끼는 듯한 삶의 감촉이 있다”고 평했다.

마루야마 카즈히코는 “불행이 연속이었던 생의 영향을 받아 잇사의 작품에는 특이한 왜곡이 있지만 이는 사는 슬픔에 깊이 뿌리박은 변형이며, 인간 세상의 깊이에 닿는 무언가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이쿠 정신에 어울리게 잇사는 골계미를 섞어서 생생한 삶의 현장을 묘사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유머는 인간의 가슴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부조리한 슬픔에서 나온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유머의 원천은 비애이며 슬픔”이라고 말했다. 유머와 슬픔을 통한 자유로운 관점을 유지하는 방식이야말로 감동의 원천이다. 다 말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다 느끼게 해주는 방식이 하이쿠의 함축 예술이다.

미국의 현대시인 로버트 블라이는 “고바야시 잇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개구리의 시인, 가장 위대한 파리의 시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위대한 아동시의 시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는 여러 편이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래의 파리와 보름달의 하이쿠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나온다.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빌고 발로도 빈다(やれ打つな蝿が手をすり足をする).’

파리의 재빠른 손발의 움직임을 구명 활동하는 동작으로 비유해 웃음을 주는 한편 가엾은 생명에 대해 보이는 애틋한 심사이다.

‘보름달 따 달라고 우는 아이로구나(名月を取つてくれろとなく子かな).’

보름날 달밤에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시인은 달 따달라고 운다고 생각한다. 밝은 달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싫지는 않았나 보다. 기발한 비유다.

평생 객지를 떠돌며 유랑했던 시인은 늘 외로웠다. 그를 따라다닌 것은 외로움과 시를 써야 하는 숙명이었다. 잇사의 시에서는 무상한 바람이 부는 세상이 펼쳐진다. 고아 같은 삶을 살다 만혼의 짧은 행복을 누렸지만 자식들이 차례로 죽고 아내마저 잃고 다시 한번 외톨이가 되고 만다. 삶의 덧없음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이쿠라는 예술이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외로움… 빛은 어둠 속에서 봐야

‘벼룩 네게도 분명 밤은 길겠지 외로울 거야(蚤どもがさぞ夜永だろ淋しかろ).’

인간 존재의 본질은 외로움이다. 찾아오는 이도 없고 등을 맞댈 아내도 없이 벼룩과 벗하면서 길고 긴 밤을 지새우는 시인은 쓸쓸함에 기대어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벼룩에게도 밤은 외로울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유한한 생명의 공동체 의식을 선언하는 유머와 인간미를 드러낸다.

‘꽃 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花の陰赤の他人はなかりけり).’

꽃이나 눈의 공통점은 아름답다는 점과 생명이 아주 짧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만 홀려서 순간적으로 모든 근심을 잊어버리는 수가 많다. 게다가 벚꽃이 만개하여 그늘까지 만들어진 나무 아래라면 모르는 사람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낙화의 근심일랑 잊고 만개한 생의 환희를 느끼게 되리라.

‘사람이 물으면 이슬이라고 답하라 동의하는가(人問ば露と答へよ合点か).’

다른 사람이 만약 인생의 의의를 묻는다면 그것은 이슬 같은 것이라며 과감하게 말하라고 하면서 동의를 구한다. 그 잇사가 남긴 명문구이다. 인생은 덧없이 살다가 아침에 이슬로 나타났다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다.

‘간단치 않게 인간으로 태어난 이 가을 저녁(なかなかに人と生まれて秋の暮).’

힘겨운 세상살이 와중에도 가을 저녁 문득 생각해 본다. 불교적 세계관에서 보면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은 희박하다. 8400만 번의 윤회를 거쳐야 인간으로 환생한다. 삶의 무거움이 느껴지는 시이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의 모기에도 물리다니(目出度さは今年の蚊にも食われけり).’

모기에 물리고도 짜증은커녕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露の世は露の世ながらさりながら).’

이 구는 죽은 자식 곁에서 비탄에 잠긴 아내의 모습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롭고 슬픈 심경을 읊은 것이다. 심한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숙인 얼굴을 들려고 노력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에 동조하면서 호소하고 있다. 이 세상은 안개처럼 덧없는 것,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 나은 미래가 온다는 보장도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발을 디딘 이 땅에서 더 힘을 내서 살아야 한다. 잇사가 삶에 강한 애착을 갖는 이유다. 이것이 잇사가 이 땅의 ‘야윈 개구리’들에게 하이쿠로 전하는 메시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하며 ‘바로 여기’, ‘이 순간’에서 다시 한 번 기운을 차리는 정신이 잇사의 하이쿠 정신이다.

우리가 ‘덧없음’이라는 느낌을 갖는 것은 세상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기 때문이다. 무의미를 극복하고 삶의 영원성과 사물의 본질 그 정수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잇사는 ‘감각’에 의존하며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하이쿠를 지었다.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속에서 무상한 슬픔에 잠긴다. ‘그렇지만’이라고 심기일전해 암흑 같은 슬픔 속에서 빛을 찾으며 긴 여운을 남기는 감동을 만들어 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봐야 밝다.

※ 최치현 -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지역학 석사를 받았다. 보양해운㈜ 대표 역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한다. 저서는 공저 [여행의 이유]가 있다.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한다. 독서회 ‘고전만독(古典慢讀)’을 이끌고 있으며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2023년 1월 21일 토요일

백아절현(伯牙絶絃), 내 마음의 소리를 알아듣는 친구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을 가진 백아절현(伯牙絶絃)이다. 거문고 연주에 정통했던 백아의 음악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했던 친구 종자기의 일화가 소개돼있다. 백아와 종자기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이 외롭고 험난한 인생에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친구가 있는지, 또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알아주는 친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기(知己)’ 또는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같이 밥 먹고, 수다 떨고, 학교 다니고, 몰려다니는 그런 친구 이상의 의미이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나의 생각을 읽어주고, 말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다 알아주는 친구, 그런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지음’이라는 호칭은 참 귀하다. 이런 친구는 흔하지 않고, 서로에게 이런 존재가 돼주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열자(列子)』의 「탕문(湯問)」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 백아는 거문고 연주를 잘했고, 친구인 종자기(鍾子期)는 그 연주를 듣기 좋아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높은 산에 오르는 데 뜻을 두자 종자기가 말했다. “좋구나! 우뚝우뚝한 것이 마치 태산(泰山)과 같구나!” 또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연주를 하자 종자기가 말했다. “좋구나! 출렁출렁한 것이 마치 장강(長江)이나 황하(黃河) 같구나!” 백아가 연주하며 생각하는 것을 종자기는 틀림없이 알아냈다.

한번은 백아가 태산의 북쪽으로 놀러 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바위 아래서 비를 피하게 됐다. 그는 마음이 슬퍼져 이내 거문고를 잡고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맛비의 곡조를 타고 다시 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연주했는데, 곡이 매번 연주될 때마다 종자기는 즉각 그의 뜻을 알아맞혔다. 백아는 거문고를 놓고 감탄하며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의 듣는 능력은. 그대가 상상하는 것은 나의 마음과 같으니, 내가 어디에서 나의 연주를 숨길 수 있겠는가?”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에 정통한 사람이었고, 친구인 종자기는 그 음악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우리나라에서 판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귀명창’이라고 하는데, 백아에게는 종자기가 그런 존재였던 셈이다. 백아는 주로 즉흥곡을 연주했던 모양이다. 이것은 타고난 재주가 아니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만의 악상(樂想)을 떠올리며 연주할 때마다 종자기는 그 곁에서 시를 읊조리듯 그 연주에 대한 화답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감상은 백아의 악상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태산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연주하고, 종자기가 이에 그 음악이 표현하는 것을 맞춘 일화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음을 보여준다. 백아는 종자기의 뛰어난 ‘청음(聽音)’ 능력을 극찬하며 “내가 어디에서 나의 거문고 소리를 숨기겠는가?[吾於何逃聲哉?]”라고 감탄했다. 이것은 ‘감탄’이라고 볼 수도 있고 ‘탄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원문의 ‘탄왈(歎曰)’은 ‘감탄하며 말하다’ 또는 ‘탄식하며 말하다’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자신의 연주를 너무 잘 알아듣는 그의 능력에 분명 그는 감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몰래 자신의 마음을 거문고 연주에 의탁해 혼자 음미하고자 해도, 듣기만 하면 다 알아채는 종자기가 있으니 세상 어디에서도 그런 고독한 연주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탄식이기도 할 것이다. 백아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감정이 있을 텐데, 그것을 거문고 연주로 표현하는 순간 종자기에게 들키고 말 테니까.

그러나 감탄이든 탄식이든 백아는 종자기의 존재가 너무 고맙고 기뻤을 것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이렇게 완벽하게 이해해 주는 친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음악을 연주하는 재주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은 그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재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문학, 건축 등의 분야에서도 그것을 창조해 내는 작가 못지않게 그들의 작품을 알아봐주는 뛰어난 비평가들을 함께 기억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본미(本味)」편에 그 뒷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그들이었는데 어느 날 종자기가 죽었다.(종자기가 죽었다고만 되어 있을 뿐, 언제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는 설명이 없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 이제 세상에는 백아 자신으로 하여금 다시 거문고를 연주하게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절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을 ‘백아절현’에 빗대 말하게 됐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악기를 매우 소중하게 다룬다.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딱딱한 케이스에 거대한 악기를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먼지를 닦아주고 털어주며 관리한다. 내 몸에 잘 맞는 악기는 내 분신과도 같으며, 너무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나머지 악기에 애칭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백아에게 거문고란 이처럼 분신과 같이 소중한 물건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종자기가 죽고 나자 그 소중했던 거문고의 줄을 끊고 부수고는 죽을 때까지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주옥같은 연주를 해도 이제는 그 소리를 알아줄 종자기가 없으니, 그는 거문고를 연주할 이유와 의미를 잃고 말았다. 늘 말을 하던 사람이 벙어리가 된 것과 다름이 없고, 마라톤 선수가 두 다리를 잃은 것과 다름없다. 백아는, 자신의 연주는 종자기가 들어줄 때에만 의미가 있고 그 가치가 빛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당시 종자기 외에 백아의 연주를 애호하며 듣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과연 없었겠는가? 분명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백아는 제대로 듣지 못하는 그 청중 앞에서 연주하기를 거부했다.

『여씨춘추』에서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이 이어진다. “거문고만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현자(賢者) 역시 이러하다. 비록 현자가 있다 하더라도 예(禮)로써 그를 대우해 주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충성을 다하겠는가? 이것은 마치 마부가 좋지 않으면 천리마라도 저절로 천 리를 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천리를 달리는 재주를 가진 말이라 해도 그 재주를 발견하고 제대로 발현할 수 있도록 알아봐주고 도와주는 백락(伯樂)이 없으면, 결국은 보통의 말보다 못한 처지로 전락해 쓸쓸하게 죽어간다고 한유(韓愈)는 그의 글 「잡설(雜說)」에서 설파했다. 이렇듯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모든 존재는 그에 걸맞는 상대, 지도자,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아주고,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친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친밀한 인간관계’이다. 이해(利害)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가 아닌, 그냥 ‘네’가 ‘너’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내 마음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백아 역시 그런 순간마다 더욱 거문고 연주에 몰입했을 것이다. 언어로 나의 마음이 다 표현되지 않더라도 나의 얼굴을 보고, 내가 무심코 한 말을 듣고, 나의 지나가는 한숨을 듣고, 내가 쓴 글을 읽고,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나의 노래를 듣고, 나의 연주를 듣기만 해도 나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친구가 있는가. 또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살고 있는가. 종자기 같은 친구가, 내 마음의 소리를 알아주는 ‘지음’이 나에게도 있다면 이 외롭고 험난한 인생에서 참 감사할 일이다.

한림학보/강지희(교양기초교육대학 · 강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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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일 토요일

연비어약(鳶飛魚躍),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기상으로

 연비어약(鳶飛魚躍),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기상으로



움직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구름 속의 번개와 바람 앞의 등불과 같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이는 불꺼진 재와 말라 죽은 나무와 같도다.

모름지기 멈춘 구름과 잔잔한 물 위에서
소리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기상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바로 도를 체득한 이의 마음인 것이다.

雲電(운전) : 구름 사이에서 번쩍이는 번개.
風燈(풍등) : 바람 앞의 등불, 즉 풍전등화(風前燈火).
雲電風燈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흔들려 고요함이 없는 것을 말함.
嗜寂(기적) : 고요함을 좋아함.
死灰槁木(사회고목) : 차갑게 식은 재와 말라 죽은 나무. 槁는 枯와 같다.
* 『장자(莊子)』 재물론(齋物論)에 나오는 말로 ‘생기와 활력이 없음’ 을 비유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채근담에서도 이 비유는 수없이 여러 차례 등장하며 이는 ‘자기 존재 자체도 잊어버린 - 喪我(상아) 忘己(망기)의 극도의 고요한 상태’ 로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 ‘도를 체득한 경지’ 로 표현하고 있다.
須(수) 有(유)~ : 모름지기 ~이 있어야 한다.
定雲止水(정운지수) :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구름과 물. 停雲止水와 같음. 여기서 定은 停의 뜻이다.
鳶飛魚躍(연비어약) : 솔개가 하늘에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오르다. 《詩經(시경)》과 《中庸(중용)》에 나오는 말로, ‘생명의 약동’ 을 표현한 말이다.
纔是(재시) : 이것이야 말로 ~이다.
心體(심체) : 마음의 본체(本體), 마음의 본바탕.

판교 정섭(板橋 鄭燮, 청, 1693-1765) - 난지(蘭芝)
◆출전 관련 글

◇이른바 <연비어약(鳶飛魚躍)> 의 경지란?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편(旱麓篇)에

鳶飛戾天(연비려천) 魚躍于淵(어약우연)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뛴다.

戾는 ‘어그러지다, 맞지 않다, 벗어나다, 사납다, 흉포하다 / 허물, 죄’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그냥 ‘이르다, 다다르다’ 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 구절은『중용(中庸)』에도 그대로 나오는데, 중용의 도가 온 우주의 섭리를 포괄하는 반면, 이 세상의 가장 미세한 사물 속에도 깃들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自然)스럽고 조화(調和)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다’ 라는 뜻으로, 만물(萬物)이 저마다의 법칙(法則)에 따라 자연(自然)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全體的)으로 천지(天地)의 조화(調和)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自然)의 오묘(奧妙)한 도(道)임을 말한 것이다.

흔히 ‘정중동(靜中動)’ 이란 말이 있거니와, 사람의 마음이란 떠가다가 멈춘 구름 사이에 솔개가 원을 그리며 유유히 날듯이, 또는 흐르다가 멈춘 맑은 물 위에 물고기가 한가히 뛰놀듯이, 언제나 태연자약(泰然自若)한 가운데 힘찬 활동력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니 이는 바로 군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아울러 말한 것이리라.

 

◇<연비어약(鳶飛魚躍)>과 관련된 시

▶율곡(栗谷) 선생이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갔을 때, 노승 의암(義庵)이 물었다. “유교에도 ‘비공비색(非空非色)’ 이라는 말과 같은 법어(法語)가 있느냐?” 이에 율곡은 즉석에서 대답하였다. “<연비어약(鳶飛魚躍)> 이 곧 비공비색(非空非色)의 의사(意思)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한시를 지었다고 한다.

鳶飛魚躍上下同 (연비어약상하동) 연비어약(鳶飛魚躍)은 위나 아래가 똑같아
這般非色亦非空 (저반비색역비공) 이는 색(色)도 아니오 또한 공(空)도 아니라네.
等閑一笑看身世 (등한일소간신세) 실없이 한 번 웃고 내 신세 살펴보니
獨立斜陽萬木中 (독립사양만목중) 노을 지는 숲 속에 나 홀로 서 있네.

▶퇴계(退溪) 선생은「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서 천지만물의 자연스러운 운행을 이렇게 노래했다.

春風(춘풍)에 花滿山(화만산)하고 秋夜(추야)에 月滿臺(월만대)로다. 四時佳興(사시가흥)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魚躍鳶飛(어약연비) 雲影天光(운영천광)이야 어늬 그지 있으랴.
봄바람이 산 가득 꽃을 피우고, 가을 밤 달빛이 환히 비추는 것은 어긋남이 없는 우주의 질서이고,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와 함께함은 자연과 합일(合一)된 인간의 모습이다. 게다가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뛰노니 구름이 그림자를 짓고 태양이 찬란히 빛나는 조화야 어찌 끝이 있겠는가.

이렇듯 <연비어약(鳶飛魚躍)> 은 만물이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모습들을 집약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저리타임